사찰 순례

망월사

노공이산 2014. 7. 5. 15:27

 

전에는 산에 가기 위해 절집을 스쳐 지나갔지만 요즘은 절에 가기 위해 산을 찾는다.

 

도봉산 자락에는 망월사가 있다. 망월사의 연원은 멀리 신라 선덕여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덕여왕은 해호화상을 존경하여 측근에 두려 하지만 해호화상은 이를 마다하고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념한다. 그가 머물던 이곳에는 망월산성이라는 산성이 있었는데 망월사란 절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편,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바위가 있어 토끼가 달을 쳐다보는 형세여서 망월사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경내에는 1793년에 세운 천봉당태흘탑과 1796년에 수관거사가 쓴 천봉선사 탑비, 청나라의 실력자였던 위안스카이가 쓴 망월사 현판, 이름을 알 수 없는 묘탑, 혜거국사 승탑 등이 있다.

 

 

 

  ▲ 위안스카이가 쓴 망월사 현판글씨. 그가 왜 이 현판을 썼는지 궁금하다.

 

 

 

  ▲ 다른 절과 달리 벽화가 천진하다. 판화 같기도 하고 이중섭 그림같기도 하고 장난친 것 같기도 하고...

 

  ▲ 창호살이 참 아름답다.

 

  ▲ 망월사에 오면 생각나는 스님이 있다. '도봉산 호랑이'라 불렸던 춘성스님이다.

 

춘성(春城)스님

만해 한용운의 유일한 상좌인 춘성스님은 본명이 이창림( 李昌林) 1891년 3월 30일 ~ 1977년 8월 22일)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기도 했다. 선승으로도 명성이 있었다. 출가후 받은 법명이 춘성(春城)이고, 법호는 춘성(春性)이다. 이춘성으로도 부른다. 본관은 평창(平昌)이며 별칭은 무애도인(無碍道人)이다.

 

강원도 인제 출신이며 13세 때인 1903년에 출가하여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에게 사사하였고 만공스님의 문하에서도 사사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신흥사와 석왕사 주지, 광복 이후에는 망월사, 전등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평생을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았으며 한국 전쟁 때는 망월사를 지키기도 했고, 거침없는 육두문자 풍자로 유명하였다.

 

만해 한용운과 용성스님, 만공선사의 제자로 일제강점기 당시 반일 인사로 요시찰 인물이었으며 1940년대부터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한국 불교계에 욕쟁이 스님으로 유명하였다. 화엄경을 거꾸로 외웠을 만큼 실력을 드러내 당대 최고의 '화엄법사'라는 명성을 얻었다.이불의 음이 부처와 이별을 뜻한다며 평생 이불을 덮지 않고 잠을 잔 승려이기도 했다.

 

 

 

 

 

 ▲ 일요일날 점심 무렵에 망월사에 가면 무료 국수 공양을 할 수 있다.

 

  ▲ 천봉당태흘탑과 천봉선사탑비.

 

천봉당태흘탑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6호로 팔각석종형의 구조로서 기단부위에 탑신을 안치하고 옥개석을 얹은 위에 상륜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천봉선사 탑비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천봉스님이 입적한 지 4년 후, 탑을 세운 지 3년 후에 건립했다고 한다. 무늬가 없는 4각대석 위에 탑비를 세웠으며, 그 위에 한식기와 팔작지붕을 조각한 옥개석을 두었다.

 

 ▲ 혜거국사 승탑

 

이 승탑의 주인공인 혜거국사는 속성이 노(盧)씨이며, 자가 홍소로서 고려시대 국사를 지냈다하나 행장이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선학원

 

청정한 기운이 감도는 망월사의 수행공간이다. 일반인은 출입이 통제된 이 곳에서 젋은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집착을 버리는 행을 닦으라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의 문이 열린다.

 

옳게 판단하여 사랑을 실천하라

동요하고 산란한 마음의 문이 닫힌다.

 

버릴 것은 버리며, 동시에 볼 것은 보고

옳게 행하면 그 생활은 완벽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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