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순례

구례 화엄사(求禮 華嚴寺)

노공이산 2014. 7. 5. 14:02

구례 화엄사(求禮 華嚴寺) 사적 505호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번지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華嚴寺)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스님인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절이다. 연기조사는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자락 황둔골에 전각 두 채의 작은 절을 지었고 절의 이름을 화엄경에서 따서 화엄사라 했다고 한다. 화엄사는 그 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화엄사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이 절에 주석하면서부터 화엄의 대도량으로 사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신라 후기인 842년에는 다시 도선국사가 창건 이래 최대의 중창불사를 하였는데 이 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전체가 소실되고, 승려들도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 뒤, 벽암대사가 중창하여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하는데 여느 사찰과 달리 대웅전이 아닌 각황전 중심으로 배치가 이뤄졌다는 특징이 있다. 국보 제12호인 석등을 비롯한 보물급 문화재가 즐비하고 화엄사 매화도 유명하다.

 

화엄사 창건설화
백제의 한 마을에 살던 노인은 어느 날 산에서 심상치 않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노인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에 가보니 그곳에는 조그만 움막이 있었고, 장엄한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 움막에서 천축국(인도)의 승려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는 천축국(인도)에서 불법을 펴고자 인연국토에 왔습니다. 제가 이곳에 올 때에는 ‘연’이라는 짐승을 타고 왔는데, 연은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나는 짐승으로 제가 교화하여 제자로 삼았으며, 방금 독경한 것은 ‘대방광불화엄경’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때부터 그가 연을 타고 다니므로 ‘연기대사’라고 부르며 그에게 법문을 청해듣고 깊은 신심(信心)을 얻게 되었다. 연기대사는 자신의 움막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짓고 ‘화엄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 화엄사 일주문

 

▲ 일주문을 지나면서 만나는 전각들과 석축이 크고 웅장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에는 의상대사가 화엄사를 화엄종의 원찰로 삼아 머물렀으며 신라 경덕왕 때에 이르러서는 8가람, 81암자의 대사찰이 되었다고 하며 이 때 '남방제일화엄대종찰'이란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각황전 기단, 각황전 앞의 석등과 대석단, 동.서 오층석탑, 효대라 불리는 사사자삼층석탑과 석등이 당시의 유적이다. 신라 문무왕 17년(677)에는 의상대사가 장육전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을 둘렀으며,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법당과 석등을 조성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화엄사는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공양하고 있다. 사찰 안에는 국보 제67호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전통사찰이다.

 

▲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화엄사의 법당이다. 원래 이 건물터에는 의상대사가 세운 장육전이 있었다. 의상대사는 장륙존상을 봉안한 후 화엄경으로 건물 벽을 장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화엄경 파편만 남아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새로 짓고 숙종이 직접 ‘각황전’이라는 전각이름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각황전은 화엄사 대웅전과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석축 위에 앞면 7칸, 옆면 5칸의 2층규모로 지은 팔작지붕 다포양식의 전각이다. 내부는 통층이고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이며 천장주위는 빗천장(경사가 진 천장)으로 마감하였다. 건물이 웅장하고 건축기법이 우수하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  각황전 앞 석등(覺皇殿前石燈) 국보 제12호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 조성시기는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통일신라 헌안앙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인 함통(咸通, 당나라 연호) 전후로 보고 있다.

 


높이 6.4m. 기단부, 화사석(등불을 밝히는 부분), 상륜부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안상(코끼리 눈을 본 떠 만든 장식 문양)이 새겨진 팔각형의 아래돌을 두고 그 위에 연꽃잎을 새긴 돌을 얹었다. 그리고 구름무늬의 괴임돌을 받치고 장고모양의 사이기둥(간석)을 세운 다음 연꽃임을 새긴 윗돌을 올렸다. 화사석은 팔각형이고 네면에 창이 나있으며 팔각의 모서리마다 귀꽃을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고졸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나라 석등 중 가장 크다.

 

 

 

 

 ▲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이 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대사가 어머니를 위해 세웠다고 한다.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기단에는 모서리기둥(우주)이나 버팀기둥(탱주)대신 각 면에 3개씩 안상(코끼리 눈을 본 떠 만든 장식 문양)을 조각하고 그 안에 천인상을 새겨 넣었다. 1층 몸돌(옥신석)에는 문짝과 자물쇠를 새겨 넣고 양옆에 인왕상(사찰의 문을 지키는 수호신)을 조각하였으며, 사천왕상, 보살상 등을 각 면에 새겼다. 지붕돌(옥개석)의 받침은 5단이고 경사면은 완만하지만 네 모서리 끝이 약간 치켜올라가 있다.


탑은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된 체감율을 보이며 조각도 매우 뛰어나다. 가장 큰 특징은 2층 기단에 암수 2쌍의 네 사자를 기둥으로 세우고 그 중앙에 스님상을 세운 것이다. 이 스님상이 연기대사의 어머니이며 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스님상이 연기대사라고 한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더불어 8세기 중엽에 세워진 대표적인 이형석탑(異形石塔, 한국 석탑의 전형인 석가탑과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탑)이다.

연기대사와 사사자삼층석탑
효심이 지극했던 연기대사는 화엄사상을 전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연기암에 자리잡았는데, 어머니에게 매일 아침 차 공양을 했다고 전해진다. 사사자삼층석탑은 연기대사가 어머니에게 차를 공양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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