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상류, 푸른 물과 넓은 모래벌판이 어울린 곳에 자리한 신륵사는 우리나라에서 강가에 자리한 유일한 절이라고 하는데 '여주팔경'중 첫손에 꼽힐만큼 주변의 자연 풍광과 멋스럽게 어울리는 절이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좋은 자리라고 가리켰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그 말을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기도를 올리자,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며 이후 절을 짓고, 이름을 '신륵사'라 했다고 한다.
절 이름과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로는 절 건너 마을에 용마가 자주 나타났는데 너무나 힘이 세서 누구도 다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 이 절의 인당대사가 나서서 신기한 굴레로 말의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다고 하며 이후로 절의 이름을 신륵사라고 칭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신륵사가 유명해진 것은 나옹화상이 이곳에서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다. 양주 회암사에서 설법하던 나옹은 왕명을 받고 밀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이때 오색 구름이 산마루를 덮고,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는 등 각종 이적이 나타났다고 한다.
선사가 열반에든 후 절을 크게 중창했는데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과 이색이 대를 이어 불사에 나섰고, 이때 참여한 이로는 각운,자초,무학 등의 스님뿐 아니라 최영,조민수,최민수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 신륵사 안내도
▲ 신륵사 일주문
조선시대 세종의 영릉(英陵)을 여주로 이장한 후 왕실에서는 신륵사를 원찰로 중수하고, 성종(1472),현종(1671),영조(1726),철종(1858)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수령 600년이 넘었다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시야에 들어온다. 신륵사는 강가의 풍광뿐 아니라 경내 곳곳에 심어진 오래된 나무들로 인해 풍치를 한껏 돋궈준다.
▲ 나무 밑둥 가운데 줄기가 마치 관음보살이 합장하고 있는듯하다
은행나무 옆에 크기가 못지않은 커다란 굴참나무가 서있어 한층 운치를 더해 준다.
600년된 향나무도 있고...
▲ 아홉마리 용이 승천한 자리에 지어진 '구룡루'
▲ 구룡루에 오르면 여강의 시원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 범종각(梵鐘閣)
▲극락보전(極樂寶殿)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 다층석탑(多層石塔) 보물 제225호
▲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 보물 제1791호
▲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180호
▲ 절 뒤편으로 높지않은 산이지만 울창한 산림을 이루어 나무 향내가 싱그럽다.
▲ 보제존자(나옹화상) 석종비(普濟尊者 石鐘碑) 보물 제229호
▲ 보제존자 석종부도(普濟尊者 石鐘浮屠) 보물 제228호
▲ 석등(石燈) 보물 제231호
▲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0호
▲ 다층전탑(多層塼塔) 보물 제226호
이 다층전탑때문에 고려때에는 신륵사를 '벽절'로도 불렀다고 한다.
▲ 강월헌(江月軒)과 삼층석탑
연기사상과 자비, 보시의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여주의 밝은 미래를 밝히고 있는 천년고찰 신륵사를
찾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역사가 숨 쉬고 문화 향기 가득한 이곳에서 어린이와 어르신을 존중하며 이주민과 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다문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길에 님들과 동행이 되길 두 손 모아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신륵사 주지 현담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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