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단비가 내리던 4월의 마지막 날, 순천 선암사에 가기위해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연녹색으로 물들은 산과 들이 물기를 머금어 한층 더 싱그럽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비는 보슬비였다가
장대처럼 내리기도 한다. 유홍준 교수가 '가장 아름다운 절'로 꼽은 선암사를 보게 된다는 설레임과 함께
세월호 침몰사고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유족들은 비내리는 이 날씨가 얼마나 원망스러울 것인가
정호승 님의 '선암사' 라는 시가 떠올려진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포장길을 걸어간다.비가 오기때문인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왼편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 새 울음 소리가 청아하다.
요사이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도 자제했던 아내는 "아이 좋아!!" "너무 좋다!!"를 연발하며 몇 발자국 앞서서 걸어간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 진다. 희생자 모두 극락왕생 하시기를...
승탑밭도 지나고
승선교와 강선루에서는 신선이 된 듯
▲ 승선교
▲ 삼인당 연못
드디어 선암사 경내이다. 오래 된 건물들을 감싸고 있는 돌담길이 정겹다.커다란 나무에서 떨어진 꽃잎들은 땅에 떨어져서도 그대로
피어있다. 선암사를 포근히 감싸안은 조계산 자락에 운해가 짙게 깔렸다가 스러진다. 아! 꿈속에 있는 듯 황홀하기만 하여라.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라는 선암사 해우소이다. 八자형 맞배지붕에 정월 초하룻날 변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 되서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 뒤깐에 아내는 무섭다며 들어가보기를 꺼린다. 무슨 공사인지 보수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貪) 진(嗔) 치(痴) 어둔 마음 이같이 버려
한 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지으리.
귀밑에 흰머리가 부쩍 늘었어도 소녀적인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아내! 요즘 나의 가장 많은 길동무가 되고 있다.
꽃바람 들었답니다.
꽃잎처럼 가벼워져서 걸어요.
하얀 뒤꿈치를 살짝 들고
꽃잎이 밟힐까, 새싹이 밟힐까
사뿐 사뿐 걷지요.
봄이 나를 데리고 바람처럼 돌아다녀요.
나는, 새가 되어 날아요. 꽃잎이 되어.
바람이 되어
나는 날아요.
당신께 날아가요.
나, 꽃바람 들었답니다.
당신이 꽃바람 넣었어요.
김용택/꽃바람
절에 오면 부처님께 합장하고 성당에 가면 성모에게 고개숙이는 우리 아내!
나는 그런 아내가 믿음이 깊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한가지 종교를 선택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아내에게 있어서 3순위인 내가 언젠가는 1순위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 뿐, 아내의 기원 순위는
1.아들 2.남동생 3.남편이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가랑비에 젖은 옷 사이로 한기가 느껴져 온다. 아쉬운 발길을 돌릴 시간이다.
아내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오자고 한다. 좋은 사람하고의 연애는 천천히, 좋은 풍경은 아껴두고 조금씩 보는 것이 아닐런지..
다음을 기약해 본다. 아! 이 아름다운 절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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