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중국여행기
출발하기 전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때문인지 아니면 해외여행도 몇 번의 연륜이 쌓인 탓인지 예전처럼 설레는 마음은 덜하지만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상하이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이륙 후 곧바로 기내식이 나오고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다는 멘트가 나온다. 가까운 거리라는 게 실감이 난다. 입국장으로 나오자 이번여행의 가이드인 최봉호씨(조선족.31세.138-5597-7204)가 피켓을 들고 서있다. 북한식억양에 꾀죄죄한 모습이 신뢰감이 떨어지게 했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4박5일 동안 잘 지내야지하고 마음을 달래본다.새삼 외모나 말투가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보면서 강씨 라는 한족이 운전하는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내로 들어와 맨 처음 내린 곳은 와이탄(外灘)거리였다. 과거 중국이 프랑스,영국 등 유럽 열강에 침략을 당했던 시절에 프랑스 조계지에 세워진 유럽풍의 건물들은 이제는 관광객이 넘실대는 거리가 되었다. 수많은 서양인 관광객과 시골에서 온 듯한 내국인들은 저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할까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중국인들의 자부심이라는 강 건너 푸동 지역의 마천루들은 사진에서 많이 봤던 탓인지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난징루(南京路)로 이동하여 거리를 거닐었다. 서울의 명동쯤에 해당하는 난징루에는 현지인 보다는 단체로 시골에서 온 듯 한 관광객들이 들끓었다. 키도 작고 꾀죄죄한 모습이 남방인의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차를 타고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곳으로 갔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무표정한 중국인 관리인의 모습이며 웬지 허술하다는 느낌을 지울수없다. 상해에 오는 한국인들은 열이면 열 모두 이곳에 들를 텐데 중국에 입장료 수입만 안겨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란 민족이 살아남기 위한 과거와의 대화”라고 하였다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올바로 봐야 미래로 나아갈 길이 정확히 보일 것이다.
진주 파는 곳에 잠시 들렀다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서커스를 관람했다. 서커스는 볼만했지만 그들이 대부분 고아 등이며 어려서부터 혹독한 훈련에 저임금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은 서커스의 뒤끝을 찝찝하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호텔에 투숙하려 이동하였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곳은 월홍호텔(yue xing hotel.021-5067-5557) 푸동신구 변두리 공사장 한켠에 있었다. 싼게 비지떡이라더니...
늘 그러하던 대로 경화와 동두가 같은 방을 쓰고 남 차장과 모닝오빠, 나와 이권사가 한방을 쓰기로 한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이 권사는 코도 알맞게 골고 ‘푸푸’입으로 바람을 불면서 잘 자는 것 같다.
6시에 기상하여 부실하게 느껴지는 아침을 먹고 시내로 이동하였다.
루쉰 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홍구 공원에 가서 윤의사 사당에 참배하고 루쉰 동상과 묘소가 있길래 잠시 둘러본다. 중국인들은 루쉰을 각별히 생각한다하고 그가 이곳에서 가까운 샤오싱(小興)이 고향이며 상해에서도 오래 머물렀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곳은 생각보다 소탈하다. 하긴 중국에 웬만한 도시에는 루쉰의 이름을 붙인 공원이 있으니 그도 이러한 대접이 서운하지 않으리라.
상하이에 가면 豫圓(위위엔)을 꼭 보라는 말이 있어서 가이드에게 얘기했더니 일정에 없는지라 1인당 2만원씩 내면 가능하단 대답이 돌아왔다.
예원은 명나라의 부유한 관리였던 반씨가 부친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18년에 걸쳐 지은 개인정원이다. 담벼락은 용 모양을 형상화 했으며 기와지붕에는 칼을 든 병사와 말을 탄 병사가 마치 수호신처럼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용을 형상화해
역모로 몰릴 뻔 했지만 발가락을 하나 더 만들어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한다.
40여개의 정자와 누각, 60여개의 연못과 인공동산 등이 지어져있어 무심코 다니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곳에서 우리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예원에서 나와 점심식사를 하고 황산으로 향했다.
상해 시내를 벗어나자 넓은 들판이 이어진 시골풍경이 나타난다. 중국의 전형적인 풍경이지만 녹지도 많고 집들도 깨끗하다. 특히 항저우 지역에 다다르니 야트막한 산들에 나무가
빽빽하고 별장처럼 지어진 집들은 서양의 어느 곳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5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황산시내의 한식요리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신우호텔(xin yu hotel.0559-753-1111)에서 둘째 날의 밤을 맞이하였다.
아침을 먹고 40여분간 차를 달려 황산 풍경구에 도착하였다. 산중턱까지 차로 오른 후
운곡사 케이블카 정거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백아령에 내렸다. 황산은 기상이 변화무쌍하여 맑은 날을 보기 힘들다는데 오늘은 날씨도 쾌청하고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일출과 일몰을 볼수있는 최고의 지점이라는 시신봉, 청량대,사자봉,원숭이가 구름바다인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듯하여 이름붙여진 후자관해,배운정 등등 수많은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졌지만 웬지 조금은 성에 안차는 듯한 생각이다. 화강암 봉우리와 소나무등 눈에 익은 풍경때문인가.
황산 산행의 묘미는 서해대협곡을 일주하는데 있다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던지라 우리는 그에게 3만원씩을 더 주기로 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곧 이어 가파른 절벽이 나타나고 바위봉우리 옆으로 난 계단을 돌아나가면 또다시 펼쳐지는 기암절벽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가이드말대로 이 서해대협곡을 와보지 않고는 황산에 올랐다고 얘기할 수 없을듯하다.
아찔한 현기증에 절벽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낯익은 식물이 보인다. ‘곰취’다. 황산에 와서 곰취를 보다니 방태산에 곰취 뜯으러 가자는 약속을 여행 때문에 포기하게 되어 못내 아쉬웠는데 역시 강하게 원하면 이루어지는것인가. 누가 볼세라 한 움쿰씩 따서 재빨리 배낭에 넣었다.
협곡을 일주하여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니 황산산행이 끝났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한 탓에 발 뒤꿈치가 아프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무릇 중국에 오악이 있어 이 산들에 오르면 다른 산은 시시해보이지만 황산에 오르면 이 오악이 눈에 차지 않는다한다
돌아오는 길에 황산 옛 거리에 들러서 기념품도 사고 맛사지 숖에서 전신 마사지를 받은 후 ‘진달래’라는 식당에서 곰취 쌈을 곁들인 저녁을 먹었다.
시간은 잘도 흘러가누나.
오늘은 벌써 나흘째 되는 날이다.
아침에 항주로 출발하기에 앞서 실크집과 보석가계를 들렀다.
패키지여행을 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달갑지 않은 과정이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항저우는 여기가 과연 중국인가 라는 생각을 들게하는 도시였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반쯤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는 저택들은 유럽의 별장을 연상케 하였으며 강과 호수,나무가 우거진 산들,사람들 표정도 밝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일찍이 중국에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주 와 항주 (上有天堂 下有蘇杭) 라는 말이 있다는데 과연 허언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마르코폴로가 항주를 여행한 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는가.
六和塔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육화탑은 북송 개보3년인 서기 970년에 지원선사에 의해 전당강의 조수피해를 막기 위해 창건되었다한다.
식사를 마치고 서호(西湖)관람을 위해 서호로 갔다. 서호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답게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입구의 소동파 입상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유람선에 승선했는데 중국에 온 이후 최고의 미녀가 동두 옆에 앉았다. 이 아가씨는 한국말도 곧잘 했는데
작업(?)이 이뤄지려나하는 희망도 잠시 서호중간에 있는 섬에서 이 아가씨는 내리고 일정상 그대로 배에 남게 된 우리의 가슴으로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항주는 예로부터 온난습윤한 기후 탓 인지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중국4대 미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서시가 이곳 항주사람이란다.
배에서 내려 지나오는 길에 악비묘가 보인다. 남송의 충신 악비의 공덕과 충심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이곳의 원명은 충열묘이고 충열사 안에는 4.5m 높이의 악비 좌상이 있는데 그 아래에는 악비를 모함에 빠뜨려 죽게한 진회를 비롯한 무리의 철상이 있는데
전에는 이 철상들에 침을 뱉은 후 악비상에 절을 했다한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동방문화원이다.
절강성의 중강건설기업이 1400억원을 투자해 건설했다는 이곳은 주역의 8괘에 따라 유가,불가,도가등 3가의 건축물들이 세워져있다.
중국이 유,불,선의 총본산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게 건축물들은 화려하고 웅장해보였다.
동방문화원을 뒤로하고 용정차단지에 위치한 한약방에서 진맥을 보는등 시간을 지체한후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동파육’과 ‘거지닭’이다.
기대를 했으나 동파육은 달랑 한 점만 주고 거지닭은 명성과는 달리 맛이 별로였다.
닭똥내 같은 냄새도 조금 나고..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인가
저녁을 먹고 宋城가무쇼를 보러갔다.
宋城千古情이라 이름 붙은 이 쇼는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브로드웨이쇼로써 그 화려함과
스케일이 수천명의 관람객이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했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한사람만 빼고.. 서호를 배경으로 내려오는 전설과 송나라 민족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세계적인 수준의 이 뮤지컬은 등장하는 배우가 약 450명이며 화려한 조명, 쉴 새 없이 변화하는 무대세트, 천장에서 쏟아지는 비, 폭발하는 대포 등 연신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안 -
눈앞에 송성 가무 쇼의 잔영이 아른거리고 피곤이 엄습해온다.
내일은 돌아가는 날이다. 이로써 나의 두 번째 중국여행이 끝나가려한다. 말로만 듣던 것과
직접 경험함의 차이는 작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생각지 못한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차창 안에서 내다본 풍경이었지만 난 중국에 대해 조금 알듯 하기도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2년여 중국어를 공부했지만 어떤 때는 중국사람들 말하는게 잘 들리고 어떤 때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처럼, 중국은 앞으로도 여전히 내가 주의 깊게 궁굼증을 가지고 지켜봐야할 나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중국의 자부심이라는 상하이의 '푸동'지구
왼쪽 양복입은이가 이번 여행의 가이드 조선족 '최봉호'씨
난징루. 서울의 명동거리 같은곳
상해 임시정부청사. 생각보다 더 작고 초라하고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얼마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선상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루쉰공원안의 매헌 윤봉길 기념관
루쉰 동상. 그는 상하이에서 가까운 '샤오싱' 출신 입니다
예원.옛날 중국 부호의 정원이었답니다
황산에 오르니 천하가 발아래라
기암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장엄함이
서해대협곡을 일주하는중. 황산에 가면 서해대협곡을 꼭 일주 해야할듯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주와 항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주는 바다,강,호수,산이있는 깨끗한 도시였습니다.중국사람들이 은퇴후에
살고싶은 도시라죠. 산위에 항주의 육화탑이 보이네요 절단강의 조수범람을 다스리기 위하여 세웠다죠
서호와 뇌봉탑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서호
유람선에서 만난 서시의 후예
동방문화원
송성 가무쇼
거지닭. 명성에 비해 맛은 별로..
'여행기,여행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우내장터,유관순열사 사적지 (0) | 2009.11.17 |
---|---|
2009.07.15.사비의 자취를 찾아(부여여행) (0) | 2009.07.16 |
2006년 필리핀여행 (0) | 2009.04.17 |
2007.10 명성산 (0) | 2009.04.14 |
2007.4.28.중국 태산,곡부 여행기 (0) | 2009.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