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여행자들의 메카인 네팔 포카라를 출발해 트레킹을 시작한 지 엿새째,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4130m)에 발을 디뎠다. 1950년 8000m 14좌 중 처음으로 인간의 발길을 허락한 안나푸르나 제1봉(8091m), 웅장한 규모의 남봉(7219m), 돌올하게 솟은 히운출리봉(6434m)이 머리 위에 우뚝 솟아 있다. 맞은편에는 네팔인들이 신성시해, 등반을 허락지 않는 마차푸차레봉(6997m)이 석양에 붉게 물든다. 고산 증세로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프지만, 황홀감이 모든 걸 압도한다.
이 황홀함을 느끼는 몸의 감각기관은 어디일까? 베이스캠프를 에워싸고 있는 7000~8000m 만년설 봉우리들의 장엄함이 상으로 맺히는 망막인가. 혼탁하고 분주한 도시를 떠나 히말라야의 맑고 차가운 대기를 호흡하는 코와 폐부인가. 날마다 7~8시간씩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피로가 뭉친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 그곳에 혈액을 보내느라 힘겹게 박동하는 심장인가. 아니면, 처음 4000m 고지를 밟아봤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인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반객들이 몰려서 생기는 병목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네팔 정부가 힐러리 스텝(8760m)에 12m 철제 사다리를 놓기로 했을 정도니, 4000m대의 트레킹은 특별할 게 없는 세상이다. 네팔에서는 6000m 이상만 등반으로 취급되고 그 이하는 그저 산길 걷기(트레킹)로 간주된다. 안나푸르나 지역을 찾는 이는 한해 10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대중화됐고, 트레커 대부분은 한국인, 중국인, 유럽인이다. 하지만 히말라야를 처음 찾는 등반객 저마다에겐 일생의 ‘버킷 리스트’로 올라 있던 각별한 경험이다. 다른 여행보다 준비할 것도 많다. 고산을 오르내릴 체력과 장비, 열흘 넘는 휴가와 적잖은 경비가 필요하다.
2월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가는 길, 설원이 이어진다. 앞선 일행이 다져놓은 등산로를 벗어나면, 1m 깊이의 눈 속으로 빠져버린다. |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발길이 몰리는 곳은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안나푸르나는 비교적 평이하고 풍광이 빼어나 일찍부터 트레킹을 위해 개발됐다. 체력과 일정에 따라 다양한 코스가 있지만, 국내 여행자들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는 열흘 안팎의 여정을 선호한다. 현지인 가이드와 포터의 도움은 필수다. 국내의 트레킹 전문여행사를 통하거나, 포카라에서 현지 여행사를 찾아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나는 국내 전문여행사 프로그램을 선택한 5명 그룹에 속해 함께 움직였다. 첫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해, 이튿날 오전 국내선 항공편으로 포카라로 이동했다. 30분이 안되는 짧은 비행이지만, 창 밖으론 고도 3500m의 항공기를 압도하는 히말라야 고봉들의 장관이 펼쳐진다. ‘잠시 뒤면 드디어 저 신성한 설산의 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니…’ 트레킹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오른다. 포카라에 내리면 다시 한 번 탄성이 쏟아진다. 그림엽서 같은 안나푸르나 산군의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까닭이다. 포카라가 트레킹에 뜻없는 배낭여행객들까지 불러 모으는 매력이다.
포카라에서 두 시간가량 차량을 타고 트레킹이 시작되는 안나푸르나 지역으로 이동했다. 마을 어귀에서 트레킹 허가증을 받아 산행을 시작했다. 9일짜리 트레킹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엿새간 오르고, 사흘간 내려오는 일정이다. 하루 7~8시간씩 산길을 걷고, 잠자리와 식사는 루트 곳곳에 있는 로지(산장)에서 해결한다.
▲ 2월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가는 길, 설원이 이어진다. 앞선 일행이 다져놓은 등산로를 벗어나면, 1m 깊이의 눈 속으로 빠져버린다. |
첫날 나야폴(1070m)을 출발해, 힐레(1400m)에 짐을 풀었다. 조리팀과 포터를 동반하는 여정이라, 여행자는 휴대용 짐만 지고 산길을 걸어가고 로지에서 다양한 메뉴의 한식으로 식사를 제공받는다. 가이드, 요리사, 짐꾼을 동반한 트레킹이라는 점에서 지난 시절 ‘귀족여행’을 방불케 한다. 로지는 트레킹에 최적화되어 있다. 식당, 공용 화장실·샤워실을 갖추고 있지만, 숙소엔 침상 2개, 베개 2개, 알전구 하나가 시설물의 전부다. 난방장치는 물론 거울도, 전기콘센트도 없다. 지역단위로 소규모 수력 또는 태양광을 이용해 전기를 쓰는데 사정이 열악하다. 일부 로지에선 더운물 샤워가 가능하나 동작 날랜 몇 사람이 쓰고 나면 미지근한 물은 이내 찬물이 된다. 그나마 3000m 넘게 올라가면 고산증 우려에 샤워는 언감생심이다.
본격 트레킹은 둘쨋날부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고 또 걷는다. 고레파니(2860m)까지 고도를 1460m나 올리는 일정인데, 사진으로만 만나던 만년설 봉우리를 눈 앞에 보면서 한발한발 다가간다는 생각에 긴 오르막과 계단을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어두워 숙소에 도착했다. 걸음을 멈추니 몸이 식고 비로소 고도가 느껴진다. 2월초 히말라야 2800 고지는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핫팩을 등에 붙이고 더운물을 가득 채운 식수통을 끌어안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네팔 포카라에서 출발해 엿새만에 도착한 베이스캠프
전기 콘센트, 난방장치, 거울 하나 없는 소박한 로지지만
해발 4130m 안나푸르나에서 맞는 일생 최고(最高)의 잠자리
셋째날 새벽 헤드랜턴을 켜고 푼힐(3210m)에 올라, 일출을 기다렸다. 히말라야 3대 전망대라는 명성답게 푼힐에 서면 안나푸르나 산군은 물론 8000m 14좌의 하나인 다울라기리(8167m)봉까지 이어진 산악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다울라기리는 수십년 동안 세계 최고봉으로 군림해온 과거를 지닌 봉우리이기도 하다. 1808년 다울라기리가 서구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이때는 에베레스트 등 더 높은 봉우리의 존재가 알려지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봉우리가 됐다.
▲ 2월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가는 길, 설원이 이어진다. 앞선 일행이 다져놓은 등산로를 벗어나면, 1m 깊이의 눈 속으로 빠져버린다. |
동녘이 밝아오면 설산의 봉우리들은 장엄한 윤곽을 드러내며 구름과 어울려 시시각각 신묘한 빛을 만들어낸다. 하루종일 오르락내리락 걷지만 숙소인 타다파니(2680m)에 도착하면 아침보다 고도가 530m나 내려가 있다. 새벽에 잠을 깨 마당으로 나오면, 뜻밖의 풍경을 만난다. 칠흑같은 하늘에 쏟아져내릴듯 별이 가득하다. 고도 덕에 고개를 젖히지 않아도 정면에 숱한 별들이 반짝이는 걸 볼 수 있다. 일찍 잠들게 마련인 로지의 단순한 생활은 새벽잠을 몰아내고, 오염원과 광해 없는 히말라야 산중의 밤은 뭇별의 광휘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넷째날은 추일레(2245m), 촘롱(2170m)을 거쳐 시누와(2300m)까지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지나간다. 촘롱은 깊은 산속에 있지만, 주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학교와 병원이 있고, 산중생활을 즐기며 장기 투숙하는 여행자들도 있다. 각종 장비를 갖추고 힘겹게 걷는 등산객들 사이를 교복에 가방을 맨 소녀들이 슬리퍼 차림으로 뛰어다니는 곳이다. 십여마리 노새에 짐을 부리면서 고샅길을 지나는 마을청년과 공동수도에서 머리를 감는 아낙을 만난다.
트레킹 루트의 만국 공통어는 환한 웃음과 “나마스테(안녕하세요)”다. 트레킹은 목적지보다 걷는 행위와 여정 자체의 의미가 큰 여행이다. 걸으면서 마주치는 풍광을 즐기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와 눈빛이 소중히 여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산 속 오지를 찾아가는 탐험이 아니다. 산간에서 오래전 방식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을을 지나는 여정이다.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바퀴와 동력을 활용하기 이전처럼 살고 있다. 안쓰러우면서도 정겹다.
▲안나푸르나. 네팔 |
다섯째날부터는 민가를 뒤로 하고 산 속으로 들어간다. 도반(2590m), 히말라야(2900m) 로지를 거쳐 데우랄리(3200m)에 여장을 풀었다. 900m를 올라오니 주위가 다시 한겨울이다. 수목한계선 근처라 울창한 숲은 사라지고 관목이 전부다. 로지 내부는 춥고 화장실 물은 얼어 있다. 4000m에서 찾아올지 모를 고산증을 걱정하며, 저녁식사 때 숙면을 위해 곁들이던 반주도 삼간다. 다음날 온화한 일기를 기원하지만, 수시로 변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고산의 기후다.
여섯째날, 거리는 짧지만 트레킹에서 가장 힘든 고비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3700m)를 거쳐 목적지인 에이비시로 향하는 날이다. 해발 3000m 이상에서 산행은 이전까지와 전혀 다르다. 그동안 산책하듯 가볍게 산을 오르던 이들이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한다. 두통과 메스꺼움,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일행들이 늘어났다. 고산증세다. 기압이 낮은 탓에 행동식으로 챙긴 스낵이 터질듯 부풀어오르고, 로션 등은 팽창해 내용물이 쏟아졌다. 인체 내부도 비슷한 과정을 겪느라, 고통스럽다.
▲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등반객들의 눈길을 한눈에 받는, 네팔인들의 성산 마차푸차레(네팔어로 물고기꼬리라는 뜻, 정상 부근이 물고기 꼬리처럼 두갈래로 갈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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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눈보라 대신 햇살이 강렬하다. 2월 초 에이비시 가는 길엔 눈이 1m가량 쌓여 있다. 만년설 봉우리로 에워싸인 눈부신 눈밭을 걷는 설산 트레킹의 진수를 느끼는 코스다. 등산로를 벗어나면 허벅지까지 눈 속으로 빠진다. 해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일생 최고(最高)의 잠자리를 맞지만, 로지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정신은 혼미하지만 황홀하고, 뿌듯하다.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새벽 눈밭으로 나와 안나푸르나 산군을 비추는 장엄한 일출을 보고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고도가 높지만 올라올 때와 달리,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고 홀가분하다. 사흘간의 하산길 트레킹은 설산을 잠시 만난 기쁨과 이내 이별하는 아쉬움이 엉킨 길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길. 뒤쪽으로 보이는 설봉은 닐기리(6940m)다.
출처:한겨레신문
글쓴이: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골짝의 산간마을을 가로지르는 안나푸르나 좀슴 트레킹
북위 28도46분889초, 동경 83도43분398초. 네팔 좀슴(해발 2713m) 공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위성 추적장치(GPS)에 찍힌 좌표다. 포카라에서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로 불과 30여분 만에 닿았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트레커들은 올라갈 사람들과 내려갈 사람들이 좌우로 갈려 순식간에 흩어진다. 하지만 나는 게으른 여행자답게 차부터 한 잔 마시면서 좀슴에서 하루를 묵기로 결정했다. 마을 제일 북쪽 끝 로지에 숙소를 정하고 나서 발걸음도 가볍게 북쪽 카그베니로 이어지는 트레일을 따라 반나절 트레킹을 했다. 이 지역은 티베트 고원의 남쪽 끝자락이어서 건조하고 사막 같은 풍경이다. 저만치서 ‘뎅뎅’ 종소리를 내며 등짐을 진 조랑말 행렬이 내려온다. 오후에 여기를 지난다면 무스탕 지역에서 내려오는 티베트 사람들일 텐데 …. “타쉬델렉!” 인사를 하니 “타쉬델렉!” 되받는 목소리가 꾸밈없이 쾌활하다.
티베트-인도 대륙을 오가던 타칼리족의 고향
안나푸르나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코스인 좀슴 길은 칼리 간다키 골짝 마을들을 잇는 길이다. 칼리 간다키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1(8091m)와 다울라기리(8167m) 두 큰봉우리 사이를 불과 폭 38㎞로 가르고 흐르는 강이어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으로도 유명하다.
좀슴에서 내려오는 트레일 초입은 하천 유역 북쪽 지대여서 건조한 계곡 자갈길이다. 마르파부터는 계곡 자갈길과 절벽의 메마른 산길이 반복된다. 여기서부터 칼로파니까지 이어지는 트레일은 여전히 고도 2500m 이상이고 시야가 탁 트였다. 담푸스 피크(6012m), 투쿠체 피크(6920m), 다울라기리, 닐기리(6940m) 등 양쪽으로 펼쳐진 히말라야 설봉들을 보면서 진행하니 지치지가 않는다.
이 구간의 중간쯤에 타칼리족의 중심 마을인 투쿠체가 있다. 타칼리족은 오래 전부터 칼리 간다키 계곡에 터를 잡고 살면서 티베트와 인도 대륙을 오가던 ‘소금 무역’의 중개상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니까 좀슴 트렉은 타칼리족의 고향인데,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 후 티베트 국경이 봉쇄된 이후로는 대부분 트레커들을 상대로 한 로지나 찻집을 운영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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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트레킹도 많이 찾는 코스다. 솔루-쿰부 코스의 산길. |
라르중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칼로파니(2530m)다.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사우스(7273m), 팡(7647m),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 설봉들이 멋지게 펼쳐지는 마을이고 이런 풍광을 배경으로 들어선 훌륭한 로지들도 많아서 트레커들이 많이 묵는다. 로지의 저녁 식탁에 모인 손님들은 일본인 한 사람, 독일인 둘, 그리고 우리(나와 나의 그녀)뿐이었다.
손님들은 밑에다 화로를 둔 커다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게 되었다. 내가 정한 메뉴는 이름도 멋지고 값도 무려 300루피(1루피=약 14원)나 하는 ‘안나푸르나 파라다이스’였다. 그런데 내 옆에 앉은 독일인이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낸다. ‘음식이 예사롭지 않겠구나’ 싶었지만 메뉴를 수정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여행길에서 밥 한 끼는 중요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웬만하면 꿀맛이기도 하니까. 그리하여 일단 내 앞에 놓인 음식은 거창한 제목에 비하면 그 모양은 소박한데, 내용은 마요네즈로 버무린 과일 샐러드 속에 볶음밥이 한주먹 정도 들어 있는 것이다. 한 입 뜨고 그 달고도 시큼한 맛에 괴로워할 새도 없이 옆 자리의 독일인이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끝까지 다 먹을 수는 없겠다고 답하고는 얼른 찐 감자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덕분에 우리는 찐 감자를 나눠먹으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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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는 히말라야의 전망대다. 포카라 향자 마을에서 본 안나푸르나 히말. |
아슬아슬한 절벽 길모퉁이에서 발을 삐다
칼로파니를 떠나 얼마 지나지 않으면 푸른 숲이 시작되면서 레테 콜라로 접어든다. 레테 마을(2430m)에서 보이는 다울라기리 남쪽 면이 장대하다. 하지만 잠시 바라만 보고, 어서 절벽 길을 걷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산사태로 무너진 절벽의 흙길이 한 사람이 간신히 걸을 만큼 좁고, 바로 그 위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맨발에 맨손으로 돌을 주워 나르며 새 길을 닦는 중이다. 그런데다 밑에서는 등짐을 주렁주렁 멘 조랑말 행렬이 줄줄이 올라온다. 완전 ‘트래픽 잼’(traffic jam)인데, 절벽 길모퉁이에서는 행렬을 이탈한 말 한 마리가 고개를 외로 꼬고 절대로 안 걷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서 있다. 힙합 패션의 타칼리 청년이 아무리 얼러도 꼼짝 않는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모퉁이를 아슬아슬 돌다가 돌멩이를 삐딱하게 디디면서 그만 발이 옆으로 꺾여 삐었다. 그 고집불통의 말은 등에 진 가스통 하나를 떼어내 주니까 그때서야 갈 길을 가던데, 나는 발목이 시큰한 게 예정대로 갈 길을 갈 수 있을까 좀 불안하다. 삼촌과 조카 사이라는 우리의 포터(짐꾼) 둘은 맨발에 조리를 신고 그 큰 짐을 메고 잘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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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랑말은 트레커들의 짐을 져 나른다. |
타칼리족의 마지막 마을(올라오면서는 첫번째) 가사(2120m)까지는 비교적 안정적인 길이고 오후에도 위에서만큼 바람이 세차지 않다. 그런데 어느덧 무릎까지 슬슬 시큰거린다. 내가 사진가라서 가뜩이나 진행이 더딘데, 어슬렁어슬렁 스키스톡에 의지해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우리의 셰르파(종족명이지만 산악 가이드와 동격으로 쓰인다) 왕추는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사실 적당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야 지루하지 않고 힘도 덜 들기는 하다. 결국 당일 예정인 ‘따또빠니’까지 못 가고 다나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다나(1400m)는 좀슴 트렉에서 고도가 낮은 지대에 있는 마을이어서 나무에 초록이 무성하다. 로지에서 저녁을 함께 먹은 페루인 트레커는 나야 풀에서부터 올라오는 중인데 고라파니(2750m)를 넘어오느라 발이 다 부르텄단다. 사실 나도 속으로는 고라파니 구간을 염려하는 중이었다. 하루에 1200m가 넘는 고갯길을 올랐다 내려가야 해서 좀슴 트렉에서 가파르기로 악명 높은 지점이다.
다나에서 따또빠니(1190m)까지는 불과 200m 정도밖에 고도차가 나지 않는 내리막길이지만, 나는 아픈 다리를 건사하는 데 신경이 많이 쓰인다. ‘따또+빠니’(뜨거운 물)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정도로 개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할 수 없이 따또빠니에서 서쪽의 베니로 빠져나가는 루트로 바꾸고 베니에서 차를 빌려서 포카라로 가기로 결정했다.
따또빠니에서 베니로 이어지는 길이 사실 칼리 간다키 본류를 따르는 트레일이긴 한데, 동쪽의 가르 콜라 계곡, 즉 고라파니 구간이 있는 트레일이 안나푸르나 히말 풍광이 좋기 때문에 대중적인 루트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특히 이 구간에 있는 푼힐(3210m)은 안나푸르나 히말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푼힐 트레킹’이라는 단기 루트가 개발되었는데, 시간은 부족하지만 트레킹의 묘미를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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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푸르나 코스. 히말라야 산간 지역에서는 조랑말이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
햇살 가득한 테라스에서 맞이한 히말
베니는 북쪽의 좀슴 트레일과 서북쪽의 돌포 지역의 트레일이 만나는 곳이다. 예전에는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소도시 모습이다. 베니에서 바로 포카라로 가려니까 좀 아쉬워서 소남이 살고 있는 데우라니를 들렀다. 소남은 1989년 내가 처음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했을 때 셰르파였던 친구다.
데우라니는 사랑코트(히말라야 뷰포인트) 바로 옆 구릉지에 자리잡은 아담한 산간 마을이다. 사랑코트 못잖게 안나푸르나 히말이 눈앞에 좍 펼쳐진다. 무거운 트레킹 신발을 벗어던지고 햇살 가득한 테라스에서 코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 히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자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진정 휴식이었다.
출처:한겨레신문
글·사진 여동완/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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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을 가로지르는 이런 구름다리는 특히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 많다. |
3000m, 쉬엄쉬엄 올라볼까
고되지만 누구나 도전해 볼 만한 히말라야 트레킹
히말라야 트레킹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히말라야 관광 상품의 하나다. 설산 봉우리를 점하는 ‘등정’이 아닌, 히말라야의 산길을 도보로 여행한다는 의미인 ‘입산’의 개념이다. 트레킹은 그 과정을 즐긴다. 필사적인 노력을 해서 어떤 지점에 닿아야 하는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하이킹과는 분명히 다른 고된 산행길이긴 하다. 그래서 ‘Trekking’이라는 별도의 용어를 써서 구분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트렉’(Trek)의 어원은 아프리카말이다. 19세기 초부터 영어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당시 남아프리카 식민지배에 나선 네덜란드인들이 소달구지를 타고 고단하게 여행하던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 히말라야 산행의 고단함에 적용되어 ‘고된 도보여행’이라는 의미로 전환됐다. 그런 의미에서 히말라야 트레커의 원조는 설산을 가로질러 티베트와 인도를 넘나든 무역 대상들인 셈이다.
히말라야 트렉 루트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코스는 에베레스트 루트의 베이스캠프(5550m)지만, 보통은 산간 마을이 있는 3000m를 웃도는 정도이고 2000m 내외인 가벼운 코스도 있다. 하루에 보통 7∼8시간을 걷는다. 그러나 대부분 1∼2시간만 걸으면 나타나는 찻집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은 물론 어린이에게도 큰 어려움은 없다. 컨디션에 따라서 몇 번이고 원하는 대로 쉬어 가면서 갈 만하고, 그래서 늦어지면 예정지보다 앞선 마을에서 묵으면 된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변수를 생각해서 트레킹 일정은 하루 이틀 여유를 두는 게 좋다.
네팔 트레킹 쪽지
◎네팔의 트레킹 지역은 보통 5개 구역으로 구분한다. 안나푸르나 히말, 랑탕 히말, 솔루-쿰부 히말(에베레스트), 이 세 지역이 일반적인 트레킹 루트가 개발된 지역이고, 동부 에베레스트 지역과 극서 지역은 경험과 시간이 좀더 필요한 어려운 지역이다. 그러므로 처음 트레킹을 해 보는 사람은 루트가 안정된 앞의 세 지역을 먼저 가는 게 좋다. 트레킹 시즌은 우기가 막 끝난 뒤인 9월 말부터 이듬해 우기가 시작되기 전 4월까지 이어지는 건기가 적당하다.
◎트레킹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시간과 비용, 트렉 루트, 건강 상태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 판단한다. 일단 가는 방법만 보면 트렉의 출발지까지 가는 교통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보통은 시간을 절약하는 비행기를 이용한다. 네팔 국내선 비용이 편도 50∼70달러 내외로 비싸지 않아서 크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렉을 어떻게 재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트레킹을 시작하고 끝내는 지점이 매우 다양한데 트렉의 특정 지점까지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투만두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면 국내 여행사 패키지보다 저렴하면서 취향에 따라 트레킹 코스와 일정도 조정해 준다. 한국인을 상대로 20여 년 동안 여행사를 해 온 아말 샤히(raikatours.com)와 앙 댄디 셰르파(nepaltourstrek.com) 등의 경우 능숙한 한국어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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