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청량산

노공이산 2014. 6. 28. 04:07

 

 

최치원과 김생, 퇴계 이황이 즐겨 올랐고, 곳곳에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봉화 청량산. 청량산 열두 봉우리 가운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경일봉.자소봉.연적봉.장인봉.축융봉 등이다. 이 중 자소봉.연적봉.장인봉은 철계단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되돌아내려와야 한다. 청량산 정상인 장인봉에서는 바위 벼랑 아래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장쾌한 경관을 연출한다.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금강대 등 12개의 대와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터가 있다.

 

산행은 입석에서 시작하여 오산당과 내청량사를 거쳐 주봉우리인 장인봉에 오른후 보살봉과 김생굴.외청량사를 지나 다시 입석으로 내려오는 길이 잘 알려진 코스이다.

 

이밖에 광석나루에서 시작해 내청량사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외청량사를 지나 이름실로 내려오는 코스와, 남면리에서 시작해

외청량사와 김생굴.경일봉을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내청량사.오산당을 지나 광석나루터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

 

 

 

 

▲ 오승우 그림 '청량산'

 

 

 

 

 

 

입석(立石)주차장에 차를 주차한다음 청량산을 등반했다. 청량산과 청량사는 주차료나 사찰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이른 아침이어선지 청량한 기운이 듬뿍 느껴진다. 맑은 새소리도 들려오고..

행복한 아침이다. 문득 퇴계선생의 싯귀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곳엔들 구름 낀 산이 없으랴마는

청량산이 더더욱 청절하다네

정자에서 매일 먼 곳을 바라보면

맑은 기운이 뼈까지 스며든다네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이면 쉴 수 있는 장소가 나타나고 이런 글귀들이 적혀 있어서 마음까지 정화시켜준다.

 

 

 

 

 

 

 ▲ 총명수

 

청량산에는 치원암.총명수.풍혈대 등 신라의 대문장가였던 최치원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있는데 총명수는 최치원이 마신 뒤 더욱 총명해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양쪽 절벽사이로 샘솟는 물은 가뭄이나 장마에도 항상 양이 일정하다하며 과거준비를 하는 선비들이 각지에서 찾아와 이 물을 마셨다고 한다.

 

 

총명수와 치원암을 지나  김생굴로 가는 갈림길에 이르기전 청량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청량사가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보이는 이곳에서 지난 가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기억이 새롭다.

 

 

 ▲ 늦가을날의 청량산과 청량사

 

 

아내도 연신 "너무 아름답다!" 며 좋아한다. 많은 부분을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어서 새삼 다행(多幸)인 우리부부!!

 

 

"이제 그만 가자!"는 채근에도 움직일 줄 모르는 아내

 

 

 

 

 

 ▲ 외청량사라고도 부르는 응진암

 

 

김생굴에 도착했다. 명필 김생이 기거하면서 글씨연습을 했다는 그곳이다.

 

▲ 바위벽에 김생이 쓴 글씨들이 많이 새겨져있다

 

퇴계 선생님도 이곳에 다녀가셨었나 보다

 

인근 도산면 태생인 퇴계선생은 13세때에 청량산에 들어와 학문을 연마한적이 있으며 누구보다 청량산을 사랑하셨다고 한다.

 

 ▲ 자소봉

 

 

 

자소봉에서 그리 경사가 급하지않은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한 후에 흔들다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장인봉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와서 청량사로 내려오게 된다.

 

 ▲ 오른쪽 소나무가 서있는 곳은 삼각우총(三角牛塚)자리이다. 원효대사가 청량사를 창건할 때 뿔이 셋 달린 소를 이용해 일을 하였는데 완공을 하루 앞둔 날 죽었다고 한다. 하여 이 자리에 묻었다고 하는데 지금 자라고 있는 소나무는 줄기가 세갈래이다.

 

연화봉 기슭아래 연꽃의 꽃술처럼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 송광사 16국사의 한분인 법장 고봉선사가 중창하였고 창건 당시에는 승당 등 33개의 부속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 울렸다고 하나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분위기에서 절은 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와 응진전만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청량사에는 불교의 우수한 유적 건물이 많았으나 어느 때인가 소실 등으로 인하여 거의 없어지고 현재는 창건당시 대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망월암 등 33개 암자가 있었던 유지가 있고,문수보살, 지장보살,16나한등이 봉안되어

중생의 근기에 맞는 기도처로서 손색없는 도량의 모습을 띄고 있다.

 

 

 

 

 

 

 

가파른 시멘트포장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니 어느덧 일주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산행 내내 새소리를 듣고, 느끼고...

오감이 충만히 채워진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 이래도 되나 산에 오면 버려야 한다는데...

 

 

꿈에 청량산에 노닐면서

  

  - 퇴계 이황 -

 

선경에 노는 일이

아직 흐리지 않았거늘

 

늙은 나이 이몸이 꿈속에

허무하게 들었던가

 

어찌 알았으랴 이 신선의 목침을

베고 꿈속에서

 

저 청량산 아름다운 곳에

다시금 올라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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