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날의 지혜
박노해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 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 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속에 생활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감동을 위하여
- 박노해 -
아침과 봄에 얼마나 감동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건강을 체크하라
당신 속에 자연이 깨어남에 대해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산책의 기대로 마음이 설레어 잠에서 떨쳐 일어나지 않는다면,
첫 파랑새의 지저귐이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눈치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오늘 떠오르는 해는 오늘의 해입니다
이 세상에 같은 것은 두 번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은 전적으로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지구는 단지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는 끊임없이 확장하며 순환하고 있습니다
태양도 지구도 이동하는 공간 속에서 운동하고 있는 시간이 생겨나고
시간 속의 모든 사물은 날마다 변화하는 새로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은 나날이 처음 열리는 새로운 날들이고
그 자체의 새로운 생각과 말과 행동과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단지 무디고 퇴화된 사고와 감성에 안주하는 사람만이
이 새로운 하루하루를 감동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살아 있음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감사와 은총인지를
나는 몇번씩 죽음 앞에 세워지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한 밥상에서 밥 먹는다는 게 얼마나 큰 자유인지 아십니까?
마냥 걸을 수 있고, 산을 오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알몸을 만질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아십니까?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지금 자기가 얼마나 큰 보배를 갖고 있는지 모른채,
그것을 즐기지도 못한 채,
봄을 찾는다고 천리만리 밖으로 떠도는 사람과 같습니다
봄은 이미 자기 집 울타리에 개나리꽃으로 살구꽃으로 피어 있는데
당신이 무감동하게 듣는 새소리를 듣고
"저 소리가 새소리라는 건가요? 참 듣기 좋으네요
저는 오늘 새소리를
처음들어요"라고 감동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40세가 되도록 가난한 집 골방에 누워 있다가
'장애인 물놀이'에 나온 분이었어요
침침한 관 속 같은 좁은 제 독방을 저는
<감은암(感恩庵)>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살아 있음의 감사와 은총'이라는 뜻이지요
비록 무기징역에 침묵하며 정진하는 처절한 겨울삶이지만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요한 기쁨인지,
얼마나 큰 감사와 은총인지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감동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나쁜 습성입니다
둔감하고 안이하게 그저 흘러가는 생활입니다
나날의 무의미하고 반복되는 일상생활만큼 인간을 무디게 하고
감각기관과 정신과 감수성을 퇴화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두려워하십시오 쓰지 않는 감각기관은 퇴화하고 맙니다
인간의 코는 수천가지 냄새를 구분할 수 있지만
도시 문명 생활을 하면서 그 기능을 쓰지 않아
지금은 수십가지 냄새밖에 맡지 못하도록 퇴화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얼굴 표정을 관장하는 근육은 80종류나 되고 그것이 각각
무수한 조합을 만들어 무려 7천가지 표정을 짖는답니다
지금 당신은 몇 가지 표정으로 살아가십니까?
무엇이든 쓰면 쓸수록 진화하고 쓰지 않으면 퇴화하고 맙니다
항상 노래를 부르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항상 춤을 추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항상 웃음을 띄우십시오
항상 귀를 크게 열어놓으시고
칭찬을 해드리십시오
손으로 어루만져드리십시오
항상 새로운 것을 찾으십시오
아름다운 것을 찾아 즐기십시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창조력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의 영적 성장이 멈춰버린 사람입니다
감동을 잃어버리고 생기와 신명이 없는 사람은 미래가 없습니다
정치적 견해나 말로는 진보라고 하더라도 감성과 도덕과 생활문화가
봉건성에 젖어 삶이 보수화하고 퇴보하는 사람입니다
온몸과 마음과 감성으로 열심히 감동하십시오 감동을 나누십시오
리더십의 핵심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능력입니다
감동을 잃어버렸다면 감동도 학습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항상 감동에 젖어들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안테나를 예민하게 닦으십시오
행복은 비교를 모른다
박노해
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
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
남보다 내가 앞섰다고 미소 지을 때
불행은 등 뒤에서 검은 미소를 지으니
이 아득한 우주에 하나뿐인 나는
오직 하나의 비교만이 있을 뿐
어제의 나보다 좋아지고 있는가
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
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
나의 행복은
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 지는것
나의 불행은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것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박노해
제 몸을 때려 울리는 종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자 귀를 만들지 않는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 온 목수는
자기가 살기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우리들, 한번은 다 바치고 돌아와
새근 새근 숨쉬는 상처를 품고
지금 시린 눈빛으로 말없이 앞을 뚫어 보지만
우리는 과거를 내세워 오늘을 살지 않는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흙과 뿌리를 보살피지만
스스로 꽃이 되고 과실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모두가 웃으며 오실 길을
지금 우리 젖은 얼굴로 걸어 갈 뿐이다
오늘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
참 좋은 날이다
3단 / 박노해
물건을 살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 것 단단한 것 단아한 것
일을 할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사람을 볼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아빠의 향기
박노해
야 아빠다
달려와 안기던 딸아이가
아유 냄새
이쁜 얼굴 찡그리며 고갤 돌린다
솔아 니 유아원에도 보내고
컴퓨터도 사줄라꼬
회사에서 일한 아빠 향기잖아
까끄런 내 입맞춤에 찡그리며 웃는다
솔아 훗날 너는 알게 되리라
온몸에 배인 이 아빠의 냄새를
이 기름 냄새의 설움과 아픔을
이 기름 향기의 깨끗한 가치를
굽이 돌아가는 길
박노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진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몸 하나의 희망
박노해
희망찬 얼굴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대안이 없다, 크나큰 위기다, 절망이 안 보인다,
모두들 길을 잃고 모두들 힘 빠지고
모두들 춥고 쓸쓸한 날들 입니다
우리,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자기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무엇에든 쉬이 놀라지 마십시오 쉬이 들뜨지 마십시오
자기 선 자리에서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모색과 지난날에 대한 정리와
자신을 성찰하는 일에서 균형감각을 놓치지 마십시오
상황이 어려울수록 조용한 자신감을 잃지 마십시오
몸 이라니, 구차한 이 몸을 잘 보존하라니... ...
아닙니다 몸을 망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내 큰 몸' 인 세상을 푸르게 살려나갈 미래의 씨알인
'내 몸' 입니다
여기 검고 작은 꽃씨 하나가 그냥 씨앗이 아닙니다
지난 한 생의 비바람과 해와 달과 인연이 고스란히 응결된
미래 희망의 '꽃 몸'입니다
그대 몸 속에도, 지난 시대의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다시 때를 찾아, 싹이 트고 꽃 피어날 미래가 다 들어
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근본자리로 돌아가 뿌리를 깊숙이
내리십시오.
하루하루 치열하게 '기다림'을 사십시오 멀리 내다보는
오늘을 사십시오
우리가 길을 잃은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자기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를 잃은 것은 어찌 할 수 없지만
'몸'을 망쳐버리면 과거도 미래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긴 호흡으로, '몸 하나의 희망'입니다.
바람 잘 날 없어라
박노해
바람 잘 날 없어라
내 생의 길에
온 둥치가 흔들리고
뿌리마다 사무치고
아 언제나 그치나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너무 힘들다
너무 아프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싸워야 하나
바람 잘 날 없어라
울지 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아픔 속에
외로움 속에
푸르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후지면 지는 거다
박노해
불의와 싸울 때는 용감하게 싸워라
적을 타도할 수 없다면 적을 낙후시켜라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크기로 이기는 거다 미래의 빛으로 이기는 거다
인간은, 후지면 지는거다
웃는 나의 적들아 너는 한참 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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