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큐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노공이산 2015. 4. 25. 12:40

 

 

 

큐슈올레길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오쿠분고(奧豊後)'코스. 오이타(大分)현의 분고오노(豊後大野)시 JR아사지(朝地)역에서 다케타(竹田)시 JR분고다케타(豊後竹田)역까지 11.8킬로를 걷는 이 길을 아내는 꼭 한번 와 보고 싶어했다. 비행기 타는 걸 꺼려해서 신혼여행 후로는 한번도 일본에 오지 않았던 아내가 큐슈올레길을 걸어보자는 나의 제안에 선뜻 응했던 것도 이런 열망이 강했기때문일게다.  일본의 몇몇 곳을 가 보았지만 나 역시 큐슈는 처음이라서 설레는 마음은 아내 못지않았다. 전날 후쿠오카에 도착해 JR하카타역에서 오이타행 6시 30분 첫 열차 지정석을 예약해놓고는 설레임이 컷던 탓일까 나는 새벽 일찍 잠이 깨었다.

 

 

 

후쿠오카 JR하카타(博多)역 1번 승강장에서 이 파란색 오이타(大分)행 특급 소닉 열차를 탄다. 이 열차는 하얀색의 885계열과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메탈릭 블루의 883계열이 있다고 하는데, 보통 곡선 구간을 달릴 때는 열차가 기울어지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게 되지만 883계열 소닉은 원심력을 감소시키는 신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한다.과연 곡선구간에서도 소음이나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다.열차를 탄지 두시간 삼십여분후에 오이타역에 도착하였다. 고쿠라(小倉),벳부(別府) 등 여러 도시를 거쳐왔는데 고쿠라 역에서는 선로를 변경해서 열차의 앞 뒤가 바뀌는 때문인지 좌석을 반대방향으로 돌려놓는 해프닝도 있었다.

 

 

 

큐슈의 북동쪽에 위치한 오이타(大分)역. 역내에 있는 가게에서 에끼벤(도시락)을 사고 우리의 목적지인 아사지역으로 가기 위해 차 시간을 물으니 마침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1량짜리 빨간 색 호히혼센(豊肥本線) 미야지(宮地)행 보통 열차를 탔다.

 

 

 

옛날 우리의 완행열차를 탄 느낌이다. 1량짜리 열차에 승객은 나이드신 몇 사람뿐, 산골 마을들을 여럿 지나오는 동안에도 타고 내리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우리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이런 노선들을 없앤걸로 아는데 일본에선 산골사람들의 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오쿠분고 코스의 시작점 JR아사지(朝地)역에 도착했다. 하카타를 출발할 때 가랑비가 내렸고 열차타고 오는 내내 흐린 하늘이 계속되었는데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아내에게 "당신이 전생에 좋은 공덕을 많이 쌓아서 여행갈 때마다 날씨가 좋다!"라고 덕담을 건네자 아내는 내가 성격이 유하고 너그럽기 때문이라고 응수를 한다. 이래저래 못 말리는 닭살 커플^^

 

 

 

역무원도 없는 무인역에 걸린 환영 간판

 

 

 

역 한편에 관광 안내소가 있기에 들어가 보았다.

 

 

 

 

 

 

 

 

 

설문지를 하나 써 달라길래 작성하고나서 주의사항 및 화장실 위치 등을 전해 듣는다. 코스 막바지에 있는 오카성은 입장료가 있다고 하여 300엔씩 600엔을 지불하고 안내소를 나왔다.

 

 

 

역앞에서 바라다보이는 마을전경.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다. 식당이나 상점 등도 없는 것 같다. 미리 간식을 챙기고 오이타역에서 도시락을 사오길 잘한 것 같다.

 

 

 

올레길을 상징하는 간세와 올레표시. 코스내내 이런 표시가 잘 되어 있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고 안내소에서 말했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 편으로 오솔길이 나타나고 이제부터 꿈에 그리던 오쿠분고 올레길이다.

 

 

 

빗방울을 머금은 연녹색 오솔길에 새들이 지저귄다. 인적이라곤 우리 두사람뿐! 아! 꿈 속인 듯 아늑하기만 하여라.

 

 

 

소리에 민감한 아내는 새 소리를 아주 좋아한다. 새 소리뿐만 아니라 개구리 울음도 들려오고 대나무 숲에서는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오이타역에서 사 온 도시락을 펼쳐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우리 두사람 뿐! 가끔 씩 불어오는 바람에 등나무 향내가 실려 온다.

 

 

 

이런 산골마을도 나타났지만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일본에 와서 작은 도시들을 거닐다보면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볼 수가 없어서 늘 궁금했었다. 사람들이 어디서 무얼하는지

 

 

 

우리보다 기온이 높은 곳이라서인지 온 산에 벌써 녹음이 가득하다.

 

 

 

 

 

 

 

 

한적한 산골마을에 한국 사람이 찾아주는 것이 반가울 것이다. 이런 조형물들도 보인다.

 

 

 

 

 

 

아내는 이런 포장길쯤은 나보다 더 잘 걷는다. 오늘도 저만치 앞서서 걸어간다.   젋었을 때도 좋았고 나이들어가면서 더욱 좋아지는 우리 아내.^^

 

 

 

 

 

 

논에 작은 꽃이 가득 피어있어서 가까이 가봤더니 자운영이다. 얼마만에 보는 자운영꽃인가 어릴 적 우리 동네 논에는 자운영꽃이 참 많이 피었었는데... !  서울에서 태어나고 일산에서 성장기를 보낸 아내는 자운영꽃을 처음 본다며 자꾸만 쳐다보았다.  옛날에는 그대로 갈아엎어서 비료대신 쓰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보기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자운영(紫雲英)은 중국이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란다. 홍화채(紅花菜), 연화초(蓮花草) 라고도 한다는데 토끼풀과 흡사한데 둘 다 콩과 식물이라고 한다. 연꽃 같기도 하고 작은 뭉게구름 같기도 하다.

 

 

 

자운영의 꽃말은 '그대의 관대한 사랑, 감화, 나의 행복' 이라고 한다는데 꽃말을 떠올리니 오쿠분고 올레길에서 만난 이 작은 꽃이 우리 부부에게 각별하게 다가온다.

 

 

 

작은 꽃은 오랫 동안 쳐다보아야 예쁘다.

 

 

 

자운영꽃밭을 뒤로 하고 얼마간 걸어가니 흡사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나무들이 연녹색의 이파리를 달고있는 곳이 나타난다. 가만 보니 벚나무와 단풍나무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유자쿠(用作)공원인가보다. 벚꽃은 진작 시들고 나뭇잎이 무성하지만 녹색의 향연은 꽃보다 싱그럽다. 가을이면 이곳의 단풍나무는 장관을 연출한다는데...

 

 

 

유자쿠 코엔(用作公園) 출발점에서 1.8km에 위치

 

산 속에 웬 공원일까 했는데 이곳은 에도시대 오카번의 우두머리 신하의 별장지로 영빈관이 있던곳이라고 한다. 건물은 남아있지 않고 한자(漢字)의 心자와 丹자 모양을 한 연못만이 남아있는데 연못 주위에는 500그루의 단풍나무가 있어 가을의 단풍이 유명하다고 한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젖은 물소리

 

일본의 대표적인 하이쿠 작가 마쓰오 바쇼의 작품이 떠 오르는 연못이다.

 

 

 

 

 

 

유자쿠공원을 뒤로하고 후코지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후코지(普光寺)

출발점에서 4km지점에 있는 작은 절로 음악을 좋아하는 주지 스님이 법당에 피아노를 갖다 놓고 여행자들이 연주하도록 한다고 한다. 모짜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을 청해 듣고 싶지만 법당문은 닫혀 있고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법당 옆 절벽에 암굴이 보이고 암굴옆에는 높이 11.8m로 큐슈지방 최대라는 마애불이 보인다 부동명왕 조각상이라는데 불교에 지식이 없는 나는 부동명왕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고 이 불상의 다소 험상궂은 표정은 내 고향 서산의 국보84호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떠 올리게 하였다.

 

 

 

 

 

후코지 주변은 여름이면 수국으로 온통 뒤덮힌다고 한다.

 

 

 

 

 

 

후코지와 마애불을 보았다면 들어갔던 길로 다시 나와야한다. 이정표가 조금 헷갈리게 되어 있었다. 섬세한 일본인도 미치지못하는 부분은 있나보다.

 

 

 

숲길에서 몸을 말리러 나온 뱀을 한 마리 본 후로 아내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길다란 나뭇가지만 봐도 화들짝 놀라곤 한다. 큐슈올레길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뱀에 물렸다는 뉴스는 없어야 할텐데...

 

 

 

 

 

 

 

 

 

 

 

 

 

 

 

소가와(十川) 주상절리에 다다랐다. 6.9km지점이니 절반이 넘는 지점이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아소산의 분화 때 분출한 암반을 강이 지나면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시라타키강과 이나바강이 만나면서 十자형의 지형을 이룬다.

 

 

 

물살이 매우 세게 흘러간다. 석회암 지질때문이어서인지 색깔은 조금 탁해보인다.

 

 

 

 

 

 

예전에는 바다에서 이 곳까지 배가 들어와 물건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오카(岡)산성터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지만 지금은 이끼 낀 석축만이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의 유명 작곡가였던 타키 렌타로가 바로 이 성에서 영감을 얻어 국민가요라는 '황성(荒城)의 달'을 작곡하였다고 하는데 남인수가 불렀던 '황성옛터'는 이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오카성은 중세에는 시가(志賀)씨가 거주하는 성이었지만 1594년 나까가와(中川)씨의 입부(入府)에 의해서 오카번주 나까가와씨가 거주하는 성이 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은 이 시기에 축성한 것이라고 하는데 메이지유신 때 폐번훼성 조치에 의해 대부분 건물이 허물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쇼와11년 12월 16일에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봄날 높은 누각엔 꽃의 향연이

돌리는 술잔에 그림자 비치고

천년을 이어온 소나무 보이는데

그 옛날의 영광은 지금 어디에

 

.....

 

지금 무너진 성터의 밤 하늘에 뜬 달

변함없는 저 빛은 누구를 위함인가

성곽에 남은 것은 오직 칡덩굴뿐

소나무에게 노래하는 것은 바람소리 뿐

 

자연의 모습은 변함없지만

영고성쇠 변하는것은 세상풍파라

비추려함인가 지금도 역시

아아 무너진 성의 밤하늘에 뜬 달이여

 

 

 

 

 

 

 

 

 

 

 

 

 

혼마루가 있던 자리에 타키 렌타로의 동상이 서있다. 도쿄출신으로 부친이 내무부관리였던 탓에 어려서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오카성이 있는 이 곳 다케타시에서는 12세에서 14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일본인 최초로 독일로 음악 유학을 떠났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는데 독일 유학중 폐결핵이 발병되었고 그로 인하여 23세의 젋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타키 렌타로의 동상이 있는 혼마루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이 압권이다. 큐슈의 연산들이 눈앞에 보이고 소보산, 아소산도 먼 풍경으로 보인다.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은 숲은 한폭의 파스텔화 같기만 하다.

 

 

 

어느 덧 종착지인 다케타시 분고오노역에 도착하였다. 승강장에 열차가 서 있어서 서둘러 열차에 올랐다.

오이타역에 도착해서 역 안에있는 AMU PLAZA 4층 식당가로 향한다. 아뮤플라자는 JR큐슈에서 운영하는 쇼핑몰로 하카타역에도 있고 큐슈지방에 여러군데가 있다고 한다. 저렴하고도 맛있는 식당들이 있어서 좋았다.

 

 

 

4층에 있는 '리큐'라는 식당에서 나는 1690엔 짜리 소고기스테이크를 시켰고 아내는 1280엔 짜리 소고기카레밥을 먹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일본인들은 메이지유신 전까지는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유신 후 소고기를 맛 본 일본인들은 이 맛있는 소고기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까를 연구하였고 그 결과 '와규' '사가규' 같은 명품 소고기가 탄생했다고 한다. 파를 듬뿍 썰어넣은 갈비탕 국물도 아주 시원하였다. 한국에서는 2인분을 시키면 내가 1.5를 먹고 아내가 0.5를 먹는데 오늘은 내가 1.1, 아내가 0.9를 먹었다. 아내가 이 식당의 맛을 잊지 못해 다시오자고 하지나않을까라는 걱정아닌 걱정이 들 정도로 맛이 있었다.

 

 

 

오이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후쿠오카로 돌아오기 위하여 아침에 갈 때의 역순으로 열차를 탔다. 차창에는 어둠이 내리고 아침 일찍 일어났기 때문인지 피로가 몰려온다. 옆 자리의 아내도 말수가 적어지고... 

 

일본은 아직도 열차 안에서  검표를 하는 것이 다소 이채로웠다. 젋은 차장이었는데 90도 가까이 몸을 숙여 깍듯이 인사를 하는것은 기본이요 자리에 돌아가서도 쉴새없이 안내방송을 한다. 짧은 여행이지만 이번에도 새삼 느낀 건 일본인들은 열차 차장이건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이건 일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느낌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해내는 최상의 방법을 발견할 수 없다' 는 일본 속담이 열차를 타고오는 내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