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시 모음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 이해인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 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 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포기를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저무는 꽃잎 / 도종환
가장 화려하게 피었을때
그리하여 이제는 저무는 일만 남았을때
추하지 않게 지는 일을
준비하는 꽃은 오히려 고요하다
화려한 빛깔과 향기를
다만 며칠이라도 더 붙들어두기 위해
조바심이 나서
머리채를 흔드는 꽃들도 많지만
아름다움 조금씩 저무는 날들이
생에 있어서는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아름다운 날에 대한 욕심 접는 만큼
꽃맺이 한치씩 커오른다는 걸
아는 꽃들의 자태는
세월 앞에 오히려 담백하다
떨어진 꽃잎 하나
가만히 볼에 대어보는
봄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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