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결혼 하던 날

노공이산 2014. 2. 18. 18:27

 

 

 

부모님의 데이트와 사랑 이야기

                                   

             부제:아버지의 사랑노래

              - 노형준 -

 

이 세상을 이루는 것이

우연한 만남들의 연속이라면,

내가 너와 만난 것은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우연이었어.

 

산을 좋아해서 늘 오르던 나,

산악회 회원들과 얘기를 나누었었지.

그중에 한 부부, 자기 집에 하숙을 하던

한 아가씨의 얘기를 풀어내더군.

아름답고 정숙하며,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상냥하다 칭찬했었지.

그때 왜였을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에 호기심이 핀 까닭은?

여태껏 선을 백번은 보았으나

마음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보지도 못한 여인의 이야기에

그렇게나 마음이 흔들렸을까?

차마 말은 하지 못하였지만

가슴속 마음속 생각 속으로,

그녀를 한번만 보고 싶다고

간절히 간절히도 되뇌었었지.

어느 날, 내가 산에서 잠을 청할때,

드디어 너의 목소리가 들렸었었어.

은쟁반 위에 구르는 낭랑한 목소리로

너는 텐트 밖에서 회원들과 얘길 나눴어.

장막 밖으로 보이는 너의 모습은,

마치 차일 뒤에 숨은 양갓집 규수,

실루엣 만으로도 남성들을 매혹시켰던

아랍 이야기의 공주와 닮아 있었지.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기에

부끄러워 차마 말을 걸 수 없어서,

나는 나가고픈 마음을 접고

오지도 않는 잠을 청했어.

일찍이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괴로워했듯,

무거움을 품은 채 새벽빛 받으며,

떼기 힘든 발걸음을 나는 옮겼어.

 

얼마나 시간이 흐르렀을까.

매킨리 산을 등반하려 나는

그 부부의 집에서 준비를 했지.

수많은 노련한 등반가들이

영원히 그 산에서 잠들었지만,

젊음의 열기로 넘치던 나는

두려움 따윈 없이 도전했었지.

용기로 충만하여 들어선 순간

나는 너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지.

생명을 얻은 상아 조각상처럼

하얗게 윤기나던 너의 그 피부,

날개가 있었으면 하늘로 올라가는

고결한 천사인줄 알았을 거야.

그 도도한 자태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감히 걸지 못했지.

용암처럼 불타던 나의 용기는

어느새 바위처럼 굳어 버렸어.

남자에게 정말로 두려운 것은

목숨걸고 산오르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건넴을

나는 그때 마음깊이 깨달았었어.

 

그렇게 두 번의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92년의 여름이었지.

산악회 부부가 이사를 하게 되어

나는 그림을 그려 선물했었어.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에

옛날 익혀둔 작은 재주였는데,

인연의 기폭제로 작용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었지.

그들은 내 그림이 마음에 들고

너도 미술을 좋아함을 알았었기에,

내가 너와 맞을 거라 생각하여서

너의 이름과 연락처를 건네주었어.

겉으로는 못 이기는 척,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그걸 받았지.

너를 처음 안 곳이 산이었듯이,

처음으로 연락한 곳도 산이었었어.

설악산을 등반하며 전화를 걸고

얼른 네가 받기만을 기다리면서,

행여나 진실한 내 사랑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될까봐 두려웠었지.

하지만 네가 전화를 받고

약속에 기꺼이 응해줬을 때,

지저귀는 새들도, 흘러가는 개울도,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였어.

하지만 이 모든 기쁨은

데이트 때와는 비할 수 없었지.

처음 정식으로 만난 순간

난 알았지. 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천생연분,

잃어버린 반쪽, 월하노인이

붉은 실로 묶은 만남의 배필,

그렇게 황금 화살에 맞은 채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었지.

그때 시계를 보았었다면, 나는

이렇게 주저 않고 말했을 거야.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

 

세 번째 데이트를 마치고

너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했었지.

나흘간 세번의 만남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었지.

이제 네 부모님 마음또한

내게 있는지를 보고 싶었어.

하지만 내겐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좀 더 앞서있었어.

행여나 가족들이 반대할까봐,

나를 탐탁찮게 생각할까봐,

그래서 이제 찾은 천생연분을

영원히 영원히 잃게 될까봐.

역시 그들은 반대하셨지,

너와 나의 결합을 말야.

하지만 너의 뜻은 확고했었지.

슬퍼하며 떠나던 나의 손을

너는 따뜻하게 잡아주었어.

그 무엇도, 신도 악마도

우리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

속삭이면서, 처음으로 너는 나의

차디찬 두 손을 잡아주었어.

내가 그때 네게 느낀 마음을

감히 입밖 언어로 나타내려면,

이 세상 모든 언어 쓴다 하여도

마음 전부 표현하지 못했을 거야.

 

만난 지 세달 만에 우린

행복히 혼인식을 올렸고,

내가 가려했던 일본으로

달콤한 신혼여행을 떠났어.

그때 나는 너를 보며

세상의 반은 나, 나머지 반은

너를 위해 존재하며,

결국은 온 세상이

우리를 위해 존재함을 깨달았었어.

92년 12월 19일, 그 날은

달력에 언제나 기입해두고

해가 지나고 지나도

단 한번도 잊지 않았어.

일년 후 우리 사랑의 결실,

너무나 사랑스런 아이가 우리 곁으로 와

우리의 보물단지가 되었을 때

두 손 모아 신께 벅찬 감사의 기도를 드렸지...

보물단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달려오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어.

 

어느 덧, 스무 해가 지나가고

아기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어.

우리도 어느새 검은 머리에

파뿌리가 많이들 섞이게 됐고.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이제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어.

지금껏 잠시 잊고 있던 사랑을,

계속 주는 걸 잊고 있던 사랑을

이제는 많이많이 되돌려 줄게.

 

너무나 짧은 말이지만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아-

 

여보 사랑해!!

 

 

 

'동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울릉도 여행  (0) 2014.04.07
아름다운 지난 날  (0) 2014.02.20
제주여행  (0) 2014.02.13
아침고요수목원의 가을  (0) 2013.10.29
가을여행  (0) 201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