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순례

법정 스님을 추억하며... 성북동 '길상사'

노공이산 2015. 3. 11. 22:37

 

 

 

 

오늘 3월 11일은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날이다.

스님은 2010년 3월 11일에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셨다.

기일은 불교식 관례에 따라 음력 1월 26일로 지낸다고 하니 올해는 3월 16일이 스님의 기일이다.

 

 

 

 

 

봄을 시샘하는 찬 바람이 불어서인지 찾아 온 이들이 별로 없었다. 극락전 보수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것 같다.

기온은 차갑지만 나뭇가지에 자그맣게 망울들이 달려있으니 꽃이 필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종교 간 화합에도 일조를 하셨기때문인지 길상사에 올 때마다 경내를 거닐고 있는 수녀님들을 보았는데 오늘도 수녀님 한 분을 보았다.

 

 

 

5주기 추모법회를 알리는 포스터도 보이고..

 

 

 

 

 

 

 

 

 

 

 

 

 

 

 

 

 

 

 

 

 

 

 

법정스님의 길상사 개원1주년 정기법문

https://www.youtube.com/watch?v=o5H9Ue4jPeQ

 

 

스님의 영정이 모셔져있는 '진영각' 쪽으로 발걸음을 향해본다. 길상사에 이렇게 사람이 없을 때도 있었던가 .덕분에 오랜 시간 진영각 방에 혼자 앉아서 스님을 추억할 수 있었다.

 

 

 

 

 

▲ 스님이 직접 만들고 사용하시던 임명 '빠삐용' 의자

 

 

 

 

 

 ▲ 진영각 오른쪽 화단에 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 다비식을 마친  유골은 스님이 가장 오래 머무르셨던 세 군데에 모셔졌다고 한다. 이 곳 길상사와 송광사 불일암 후박나무 아래, 그리고 홀로 수행하셨던 강원도 오두막에...

 

 

차갑고도 따뜻한 봄눈이 좋아

3월의 눈꽃 속에 정토로 떠나신 스님

"난 성미가 급한 편이야" 하시더니

꽃피는 것도 보지 않고 서둘러 가셨네요

마지막으로 누우실 조그만 집도 마다하시고

스님의 혼이 담긴 책들까지 절판을 하라시며

아직 보내 드릴 준비가 덜 된 우리 곁을

냉정하게 떠나가신 야속한 스님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정화시키려

활활 타는 불길 속으로 들어가셨나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중생들을 깨우치시고자

타고 타서 한 줌의 재가 되신 것인가요

스님의 당부처럼 스님을 못 놓아드리는

쓰라린 그리움을 어찌할까요

타지 않는 깊은 슬픔 어찌할까요

많이 사랑한 이별의 슬픔이 낳아준 눈물은

갈수록 맑고 영롱한 사리가 되고

스님을 향한 사람들의 존경은 환희심 가득한

자비의 선행으로 더 넓게 이어질 것입니다

종파를 초월한 끝없는 기도는 연꽃으로 피어나고

하늘까지 닿는 평화의 탑이 될 것입니다

하얀 연기 속에 침묵으로 잔기침하시는 스님

소나무 같으신 삶과 지혜의 가르침들 고맙습니다

청정한 삶 가꾸라고 우리를 재촉하시며

3월의 바람 속에 길 떠나신 스님,

안녕히 가십시오

언제라도 3월의 바람으로 다시 오십시오

우리에게.

 

 

이해인 수녀님의 추도시이다. 5년 전 스님이 입적하시던 날에도 오늘처럼 바람이 많이 불었었나보다. 기침을 자주 하시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있다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 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살아있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네

 

여보시게 친구

죽어서 천당 가려하지 말고

사는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 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 것을 잊지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 바라네

부처답게...

 

 

- 법정 -

 

 

 

길상사에 오면 생각나는 인물이 또 하나 있다.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무주상보시한 김영한 할머니이다.

 

 

 

▲ 고 김영한(金英韓)

 

 

 

대지 7000여평, 연건평 3000여평, 시가 1000억원 규모의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고

크게 감명받아 법정스님을 찾아가 자신의 모든 것 이었던 대원각의 건물과 땅을 부처님과 중생을 위한 청정도량으로 꾸며줄 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여러차레 정중히 거절했으나 간절히 청하는 할머니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대원각은 기존 40여개의 목조한옥의 외형을 그대로 살린채 사찰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길상사의 건물에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막대한 재산을 기부한 대가로 할머니가 받은 것은 염주 한벌과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뿐이었다.

 

 

 

<< 김영한의 삶 >>

 

1916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김영한은 집안이 어려워 15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으나 병약했던 남편이 일찍 죽자 먹고 살기위해 기생의 길을 가게된다.

 

진향(眞香)이란 기명으로 시작한 기생의 길, 영한은 제대로 가고 싶었다. 가무와 궁중무를 배웠다. 시와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23세때에는 잠시나마 일본 동경으로 유학까지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거기에 해박한 지식과 달변까지 겸비한 영어교사, 시인 백석(白石)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는 한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백석은 영한에게 '자야(子夜)'라는 '아명(雅名)'을 지어 주었으며 둘은 꿈과 같은 동거생활을 하게 된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라는 시는 이 시기 영한을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샇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일 뿐, 백석의 집안에서는 기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백석은 둘이 만주로 떠나자고 했으나 그녀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백석은 만주로 홀로 떠나고 사랑하는 이를 따라 나서지 못했던 그녀의 선택은 영원한 이별의 길이 되고 말았다. 뒤 이은 한국전쟁의 발발,

영한은 남으로 내려왔지만 백석은 북에 남게 되었다.

 

홀로 내려온 영한은 시름을 잊으려는 듯 억척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하고 장안의 3대 요정이라고 불리던 대원각의 주인까지 된다. 하지만 종종 "내 재산 가치는 백석의 시 한줄 만도 못하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 단청을 하지 않은 길상사 극락전.  대원각의 본채 건물이었다고 한다.

 

전 재산을 기부한 김영한 할머니는 99년 11월 13일 길상사를 마지막으로 찾아왔다. 자신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요사채 '길상헌'에 머무르며

법정스님의 제자인 덕조 스님등에게 유언을 하며 "나를 화장해 첫눈 오는 날 길상사 경내에 뿌려 달라" 고 당부했다.

 

 

 ▲ 김영한이 마지막으로 머무른 '길상헌'  지금은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이고 있다.

 

 

 

 

화장된 김영한의 유골은 길상사에 보관돼오다 그해 첫눈 오는 날 '길상헌' 주변에 뿌려졌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말라고 당부했으나 길상사에 고인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한 신자들의 뜻에 따라 작은 비석이 하나 세워지게 되었다. 길상사 신자인 조각가 배삼식씨가 대가 없이 깎은 것이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갑니다.

 

제가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나는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 법정 -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에 길상사에 다시 가야겠다.

스님이 못다하신 이야기를 들으러...

 

 

법정스님의 의자 (스님의 삶을 소개한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JMA0UwtMG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