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좌]정명곡 계곡 중간의 휴게소 겸 당집.[우]영봉경구 매표소 입구의 기념품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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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호텔로 가자며 영봉경구 매표소 밖까지 나서더니, 땀이 좀 식자 모두들 딴 마음을 냈다. 저 계곡 위로 뵈는 석양빛이 괜찮으니 중간 전망대까지만 갔다가 내려오자는 것이다. 더위를 먹은 것인가, 아니면 아까 본 경치에 그만 취해버린 것인가.
중국의 공원 입장료는 좀 비싸다. 이곳 영봉경구만 해도 30위안(한화 3,700원)이며, 야간에는 같은 액수로 따로 받는다. 이곳 영봉경구는 야경으로 유명하다. 폭죽이나 휘황한 조명으로 연출되는 야경이 아니라 이 경구의 숱한 기암들이 야간에 드러내는 실루엣 풍경을 말하는 것이다.
- ▲ 명옥계 전망대에서 만난 노을. 관광객이 노을 촬영에 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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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맞대거나 어깨를 부비며, 혹은 나홀로 우뚝 선 거대 기암봉과 대장벽들에 황금빛 저녁 햇살이 빗살무늬로 내리비추는 명옥계 계곡은 장엄미로 가득했다. 대암봉이나 암벽 하단부의 설동(雪洞), 관음동(觀音洞), 북두동(北斗洞) 등 동굴 안에는 여러 층의 사찰들이 들어앉아 명옥계의 풍경을 더욱 기이한 것으로 떠올리고 있다. 울 명(鳴) 자를 쓴 계곡 이름 명옥계는 소리가 없어도 이미 웅혼한 울림이 느껴지는 이 계곡의 웅장미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합장봉, 노파봉, 쌍죽순봉, 투계봉 등, 밤중이 아니어도 이미 이름이 참으로 절묘하다 싶은, 이따가 영봉야경을 연출할 기암봉들을 바라보며 15분쯤 걸어 올라가 작은 절벽 위의 정자각에 올랐다. 남동쪽 저 위 투계봉 너머, 우리가 아까 올랐던 해발 320m 지점의 암릉부터 그 아래 거대한 바위병풍과 기암봉, 대동굴들이 한눈에 조망되는 자리다. 서편 계곡 상류쪽은 기암봉과 햇살 무리의 조화로 또한 아름다웠다.
솔바람도 부는 이곳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진실로 더위를 무릅쓰기를 잘했다면서 우리는 사위가 어둑신해질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고, 기다리다 못해 올라온 가이드의 재촉에야 비로소 발길을 옮겼다.
- ▲ 영봉경구 명옥계의 조망처에 모여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중국 관광객들. 뒤의 오른쪽 두 봉이 쌍죽순봉이며, 왼쪽 협곡 안에 긴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 머리 모양의 기암도 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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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되올라와 안탕삼절 중 하나라는 영봉야경을 보았다. 아까 낮에는 합장한 모습이던 합장봉이 가이드가 안내하여 세워주는 자리에 따라 포옹한 남녀의 모습인 연인봉, 혹은 막 나래를 접은 독수리봉이 되었다가 어느 지점에선가는 고개를 젖혀 바라보자 얼굴 위로 바투 다가드는 듯 사람을 놀라게 하는 두 개의 커다란 젖무덤 모양인 쌍유봉(雙乳峰)이 되었다. 물소봉, 목동봉, 노파봉 등 수십 개의 영봉 야경은 모두 그렇게 상상을 동원해 만든 실루엣 풍경들이다.
안 보자니 아쉽고, 보자니 너무 더운 낮을 피해, 둘쨋날은 새벽부터 산행키로 꾀를 냈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서늘하기까지는 않았으나, 견딜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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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중에 웬 엘리베이터?
가이드가 먼저 삼절폭 경구부터 가자고 해서 다소 실망했다. 물줄기 없는 폭포를 무슨 재미로 볼까. 원통형의 거대한 동굴을 3분의 1쯤만 잘라내고 곧추 세워놓은 듯한 폭포굴은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낮은 속삭임에도 예민하게 반향한다. 하절폭에서 중절폭에 이어 상절폭으로, 우리는 형성 연대에 따라 여러 층의 커다란 단을 이룬 안탕산의 절벽을 이리저리 더듬듯 하며 거슬러 올랐다. 어제의 영암경구에 비하면 다소 단순한 듯한 붉고 검은 절벽 풍경이 조망점마다 반복되었다.
이윽고 해가 떠오를 무렵 계곡 저 아래에서 유장한 분위기의 음악 소리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요란한 폭죽소리가 또한 길게 이어졌다. 사람이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을 때 저렇게 폭죽으로 축복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어제와 비슷한 해발 300m 정도까지 올랐다가 우리네 것과 똑같은 더덕 내음이 풍기기도 하는 산중턱 가로지름길을 따라 우리는 정명곡(淨名谷) 계곡 상류로 향했다. 푸르스름한 이내로 덮인 좁고 긴 이 계곡에서 단연 으뜸인 경관은 다듬이 방망이와 흡사한 모양으로 곧게 선 일품봉(一品峰)이었다. 계곡 바닥으로 내려섰다가 맞은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저 멀리 귀두까지 확연한 남근석이 보이긴 했지만, 이틀새 워낙 이런 형상의 바위를 많이 보아 별 감흥이 없다.
급비탈의 암벽이어서 혹 바위라도 굴러내리면 피할 재간이 없겠다 싶은 협곡 가운데 휴게소 지나 삼절폭경구 매표소를 빠져나왔다. 오전 8시. 관리소 아가씨가 매표소 주변을 긴 빗자루로 쓸고 있다.
약 2시간30분, 6.5km에 걸친 삼절폭 경구의 오전산행은 그런대로 견딜 만 했지만 조식 후 마지막 남은 영암경구쪽 길은 어떨까.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서 주욱 가로질러 가면 되는 관광 코스라는 말에 모두들 혹 해서 나섰는데 아뿔싸, 케이블카가 고장이란다. 다행히 소형 버스로도 종점까지 오를 수 있다기에 가슴을 쓸었다.
- ▲ 영암경구 절벽길 중간에 가설된 구름다리. 월출산 구름다리와 흡사하다.
- 해발 330m의 종점에서부터 시작되는 영암경구의 이 절벽 탐승로는 길이 약 3km로, 절벽 가운데를 가로질러 계단을 매달거나 바위를 파내어 통로를 만든, 중국의 산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의 관광코스다. 중간에 천교선도(天橋仙渡)라는 긴 구름다리를 지나면서, 혹은 중간중간 마련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절벽들과 기암들은 그러나 광대한 계곡의 한쪽 사면에 드문드문 서 있는 풍광이라 짜임새가 다소 떨어진다.
- ▲ [좌]절벽길 탐승을 마치고 영암선사로 가는 길. 절 사방에 기암봉들이 늘어서 있다.[우]삼절폭경구의 좁은 협곡 지대 안에 선 기암 일품봉과 그 아래를 지나는 일행.
- 절벽 횡단길이 끝나고 나서, 위험하다고 하여 설치해둔 쇠울을 넘어 곧장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영암경구의 핵심부로 내려갔다. 영암선사라는 붉은 색 지붕의 대찰과 높이가 270m나 된다는(목측으로는 암만 봐도 120m 정도인) 천주봉, 전기봉 등의 기둥바위들, 짙은 숲지대가 어울린 절경지다. 그러나 기암봉들은 이미 질릴 만큼 보았고, 너무 더웠다. 발전기를 돌려 운행하는, 암벽 틈새에 설치한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68m를 올라가서 소용추폭포 위의 작은 연못을 보고 되내려오는 것으로 오전 산행을 끝냈다.
- 점심식사 후 오후 3시30분까지 기다려 안탕삼절 중의 하나라는 영암비도(靈岩飛渡)를 보았다. 천주봉 정상에서 수직 로프 하강을 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천주봉과 전기봉 정상 양쪽에 걸쳐둔 긴 와이어로프를 타고 이동하며 간혹 재주를 넘기도 하는 10여 분간의 묘기 대행진이 중국인들에겐 그래도 괜찮은 구경거리인 모양인지 수많은 관중이 모여 앉았다. 한국 등산꾼들에겐 전혀 색다를 것 없는 묘기다.
만약 안탕산을 간다면 영암비도 대신 차라리 용호(龍湖) 같은 산중 호수 드라이브나 다녀오기를 권한다